Le Labo, The Noir29
베티버, 삼나무, 베르가못, 무화과
취할거 같은 우디향.
서늘한 날씨의 늦은 밤, 성과 같이 생긴 성당의 복도를 걷다 구도자의 방문을 살짝 열었을때 바람과 함께 흘러나올 거 같은 향내.
메마른 표면의 강건한 느낌의 원목 가구들,
집중을 위해 피워놓은 듯한 향내,
그리고 스치듯 지나가는 홍차향.
저는 땀이 많은 편인데다 뚜벅이라 여름 향수는 많이 사지도 않고 보통 누가 차로 집앞까지 픽업해온다고 하지 않으면 뿌리지도 않는데,
최근 온도가 많이 내려갔습니다.
최고 온도 자체는 29~30도에서 왔다갔다하는 무더운 날씨이긴 해도 최고 온도까지 올라가기 전은 그나마 선선한 느낌이라 시원할때 이동해서 뜨거울때 시원한 실내에 짱박혀 있으면 땀은 거의 안날 정도의 날씨가 됐더라구요.
그 덕분에 가을 향수를 하나 둘 꺼내서 맡아보고 있어요.
그렇게 저번주 일요일 미사시간에 들고 나오게 된 향수가 떼누아였는데요.
이번 기회에 싸게 구매한 아이라 여기저기 자랑하러 다니고 싶은 이유가 컸습니다.
성당안에서 맡을 수 있는 미사 의자의 약간 메마른 나무향과, 성당 내를 시원하게 돌아다니는 약간의 습기, 큰 건물에서는 아무리 청소를 해도 날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먼지냄새와 떼누아가 섞이니까 그렇게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가 없더라구요.
여기에 화룡 점정으로 미사가 끝난 뒤에 신부님과 인사를 할때 이 향수는 나보다 신부님이 더 잘어울릴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해서무례를 무릅쓰고 뿌려도 될까 여쭈어보니 조금 당황하셨지만 이내 흔쾌히 승낙해서 뿌려드렸습니다.
이 향은 성직자나 인도어파 제복에 안성맞춤입니다.
차분하고 정갈해서 단정한 느낌의 제복 이미지를 업해주고요.
묵직하고 진하게 퍼지는 질감 덕분에 무게감과 카리스마가 더해져서 신뢰감이 느껴지는 향입니다.
또 마냥 무거운게 아니라 약간의 시원한 향도 더해져 있어서 마냥 꽉막힌 사람처럼 느껴지지도 않아요.
신부님이 뿌렸을때 너무 잘 어울려서 비유도 구도하는 성직자로 하게 되었는데요.
이 구도하는 뒷모습은 절박해서 세상의 모든 신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비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구도의 느낌입니다.
초연하게 자신이 믿는 더 높은 차원의 무언가에게 가야할 길을 묻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적고 있는 지금도 떼 누아를 뿌리고 생각을 정리합니다.
차분하게 가라앉아서 머릿속이 한결 수월하게 정리되는 것 같아요.
조금 더 시원해져서 떼 누아와 가을 향수장에 있는 아이들이 낮에도 당당할 수 있는 계절이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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